호호아이 서현이와 마루네 집입니다.

 

 

 





   호호맘  

   교사와 학생의 인간적인 만남을 생각하며
맞선 보는 남자와 여자

한 장면을 상상해 보자. 던킨도넛이나 화려한 커피 전문점이나 고급 레스토랑이 아닌 80년대식 다방.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두운 조명과 차가운 바닥에 여기저기 테이블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다. 한 남자가 구석진 테이블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스포츠 신문의 운세란을 보고 있다. 한 여자가 부모와 함께 들어와서 앞자리에 앉는다. 아무것에도 관심 없어 보이는 표정으로. 남자는 상대 여자에게는 별 관심 없이 부모들과 암울한 표정으로 세상이 참 힘들고 어렵지만 자신은 그래도 이 험한 세상에서 애써 왔으며 여자를 맡겨 주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잘 해주겠다고 한다. 부모는 잘 부탁한다면서 굽실거리면서 퇴장한다.
부모가 퇴장하자마자 남자는 여자에게 이것저것 묻는다. 부모의 직업과 수입, 가족관계와 가진 자격증이나 여자의 학력을 건조한 자세로, 성실한 답변을 듣는 것이 자신이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추궁한다. 여자는 얼굴을 살짝 굳힌 채로 마지못해 대답한다. 그런데 여자는 아마 마음이 다른 데 있는 듯 상대남에게 집중하지 않고 창밖을 보거나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손가락 장난을 한다. 남자의 얼굴이 점점 찡그려지더니 이윽고 결심한 듯, 큰 비밀을 가르쳐주는 듯 ‘세상이 매우 잘못됐으며 자신은 이 사회에서 약자들을 보호하고 큰일을 하는데 노력하는 훌륭한 남자라면서 여자에게도 그렇게 늘어져 있지 말고 함께 좋은 일을 하자’고 한다. 여자는 하품하면서 ‘지금 몇 시죠? 다음 맞선이 있어서요’라고 한다. 격분한 남자는 괴성을 지르면서 상대녀의 머리채를 잡고 ‘이런 예의 없는 년, 내가 성심껏 대하고 같이 세상을 구하는 멋진 일을 하자고 하는데 몇 시라니?’하면서 따귀를 때린다. 상대녀도 한두 대 맞고 나서는 ‘존나 황당하네. 18. 너나 잘해’라며 하이힐로 상대남의 발을 밟고 휴대폰을 꺼내 동영상을 찍더니 112에 신고한다.
잠시 후 경찰과 상대남과 상대남의 친구들, 상대녀와 그녀의 부모, 친구들이 함께 어울려 만드는 악다구니로 다방은 난장판이 되는데, 플래시와 기자수첩으로 무장한 매스미디어가 실시간으로 이 악다구니를 인터넷에 생중계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요즘의 학교현장과 교육계를 이렇게 비유하면 너무 심한 것일까? 아니다. 속마음을 들여다보면 위의 비유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교사를 존경하지도 않으면서 어쩔 수 없이 학교에 보내는 부모와 강제학습에 지쳐 어느 것에도 에너지를 쓰지 않는 법을 배운 학생과, 예전의 좀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빛나는 열정을 가끔씩만 기억하며 보충수업비와 성과급을 받아 술과 담배로 자신을 한탄하는 교사들이 모여 있는 곳이 학교이다. 어느 사람의 인권도 지켜지지 않는 괴상한 곳. 물론 학생의 인권이 가장 쉽게 무시된다.


방법이 아니라 마음이 문제

나는 공고에서 영어를 가르친다. 1학기에 교과서와 씨름하다가 교과서를 버렸다. 이 친구들은 나와 교과서를 가지고 놀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타크래프트 유닛과 대사를 공부하고 기초적인 생활영어로 함께 놀았다. 수업을 시작하면 차렷 경례 대신에 내가 먼저 인사하고 구호를 함께 외친다. “I like myself.” 학생이 직접 쓴 수업일기를 읽고 나서 함께 20분 정도 공부하고 5분 정도 필기하고 10분 정도 학습카드로 각자 공부한다. 마칠 때는 3~4명에게 묻는다. 오늘 수업에서 네가 새로 배운 것과 느낀 점이 뭐냐고. 학생들은 거의 대답하지 않는다. 한 1년 정도 하면 배운 것은 한두 명 이야기하는데 느낌을 예민하게 이야기하는 친구는 잘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무딘 사람은 인권을 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 반 친구 중 몇 명이 나를 사이코, 사기꾼으로 부른 적이 있다. 화를 내다가도 금세 풀어 버리고 웃으며 대한다고 사이코, 말을 하도 교묘하게 잘해서 학교 나가서 약 파는 사기꾼이란다.
1학년을 맡았는데 입학식 날 과자와 귤, 녹차를 준비해서 교실에서 담임, 학생, 학부모가 첫 만남을 가졌다. 조회와 종례는 구호로 시작해서 구호로 끝냈다. 중학교 담임을 할 때는 ‘우리 스스로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요즘은 ‘나는 행복하다. 나는 즐겁다. 나는 소중하다’ ‘나는 소중하다. 너도 나만큼 소중하다. 우리 모두 소중하다’ ‘나는 선택한다. 나는 책임진다.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등을 한다. 매주 학생들에게 마음일기를 쓰게 하고, 평생·1년·한 달·하루 목표를 적게 한다. 복도에서 만나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 학생에게 불쑥 네 목표가 뭐냐고 물어서 대답을 못하면 벌을 주고 목표를 말할 때까지 괴롭힌다. 학교폭력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느껴서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준다. ‘나에게 반항하는 것은 용서되지만 약자를 괴롭히는 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괴롭힘이 잘못되어서라기보다는 너무나 시시한 일이기 때문이다. 시시한 일에 네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멋지고 긍정적인 반항아가 되어라!’고 다그친다. 반항하는 것은 학생들의 권리이고 교사, 부모, 기성세대의 역할은 그 반항에서 시대의 흐름을 읽고, 자신을 성찰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다.

학급에서 이렇게 살아가니 우리 반 수업에 오시는 동료 선생님들은 죽을 맛인가 보다. 하도 여러분이 입을 대니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반 친구들의 명렬표를 수업 들어오시는 선생님들께 돌리고 ‘우리 반 학생들에게 원하는 것을 적어주세요’했다. 2주가 지나도록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딱 한 분이 내셨다. ‘1번 기초학력부진 5번 정서불안 7번 무례한 놈 19번 계속 잠’이라고 적어주셨다. 원하지 않는 모습을 말하는데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 교사와 부모들 덕에 학생들도 싫어하는 것에 집중하는 습관을 얻었다. 수업에 들어가면 자주 학생들이 자기반 담임과 다른 교사들 욕을 한다. 계속 들어주다 보니 한 시간이 다 가 버린다. 마치기 5분 전에 한마디만 하자며 이야기했다. 나는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에 시비를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정말 듣고 싶은 것은 선생님들의 잘못된 점이 아니라 너희가 잘한 일,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일을 한 가지라도 듣고 싶다고 말해주었다.


폭행은 왜 없어지지 않을까?
때리고 맞으면서는 서로 무관심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교사와 학생 서로는 학교에서 몸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마음은 다른 방향으로 달린다. 교사는 진도와 공문 처리, 승진과 퇴근 후 한잔에 마음이 가 있지만 학생은 여자친구와 핸드폰, 부모의 부부싸움과 암울한 장래에 마음이 가 있다. 한 공간에서 서로 무시할 수밖에 없는 마음들이 충돌해서 무관심과 욕설, 폭력이 일어난다. 나의 관심을 상대방에게 폭력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체벌과 학교폭력이다. 양자는 동일하다. 이런 관계 속에서만 서로를 생생하게 느낀다는 것은 슬픔을 넘어 끔찍한 일이다.

체벌과 욕설을 하는 교사를 따르는 청소년들의 심리
학생들을 자주 때리고 험한 말도 자주 하는 교사들을 잘 따르는 학생들이 있다. 욕설과 체벌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교사가 가진 신념과 실행력을 따르는 것이다. 주위 많은 사람과 미디어가 진실이라고 현혹하는 ‘세상은 살기 어렵고, 내가 살려면 남들을 속여서 빼앗아야 하고, 그러려면 공부해서 사기를 치는 법을 배우거나 독기를 키워서 협박하고 뺏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거짓 신념에 충실하고, 학생들에게 욕을 하든 때리든 이 체제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훈련해주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학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교사는 지루한 교사이다. 되바라진 학생들에게 지친 나머지 아무런 의욕도 없이 자기 수업만 충실히 하고 학생들과는 거의 상대를 하지 않으려는 교사 말이다. 청소년들이 싫어하는 교사 유형 중에 전교조 교사들도 많이 들어간다. 자신도 진보적이고 공동체적인 삶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서 청소년들에게 생각 없이 살고 있다면서 훈계하고 그럼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는 자신의 삶과 생활로 증명해주지는 못하고 책 속의 바른 생활 이야기만 읊어대고 있으니. 어쩌면 더욱 가증스러울 것이다.


존경받는 교사를 찾기 어려운 이유
교사들은 왜 학부모들과 학생들에게 존경받지 못할까? 두려움과 멸시, 경원과 아부의 대상이 될지언정, 학생들과 동지적 연대를 통해 사랑과 연대를 나누는 교사를 보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재벌회장과 보수언론사 대표, 국회의원, 의사, 판검사, 경찰 간부와 국정원 요원을 부러워하고 두려워하지만 존경하지 않는 이유와 같다. 교사들은 학생들과 평등하게 만나고 사귀는 법을 모른다. 진보적이든 보수적이든 학생들을 지배하려 하거나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열성을 다해 학생들을 ‘위해’ 열심히 지배하려 하다가 학생들에게 ‘배신’당하고 치를 떠는 과정을 몇 번 반복하다가 포기해 버린다. 또한 마을공동체가 박정희 시절부터 무너지고 가족이 해체된 상황에서 학생 하나하나가 지닌 상처를 정면에서 바라보고 안아주지 않는다. 수업시간에 자고, 욕하고, 교사에게 대드는 학생들은 자신의 상처를, 곪아서 고름이 뚝뚝 떨어지는 그 상처를 교사의 코앞에 들이대고 냄새 맡고 똑바로 보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그 상처를 외면하는 교사를 멸시하고, 그 상처에 화내는 교사와 싸우고, 그 상처가 학생 자신인 것처럼 생각한다. 우리 교사들은 학생들의 무기력, 화, 상처, 고통에 교사인 나 자신의 화, 상처, 좌절로 맞대응하면서 평행선을 달릴 뿐이다.


거미박사는 거미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요즘 대다수의 교사는 회식 자리에서 거의 학생들 욕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물론 교장, 교감 욕과 동료교사 험담도 단골 메뉴이다. 술을 잘 마시지 않는 여교사들도 비슷하다. 그들은 모이면 학생들 때문에 힘들다고 하고, 수업시간에는 혼자 들어가서 드센 학생들에게 오늘도 당하지 않을까 하며 두려워한다.

교사는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학생은 인간이다.
교사는 인간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그러려면 인간에 대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삶에 대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요즘 학교에는 사람과 삶에 대한 전문가로 자신을 생각하는 교사보다는 과목에 대한 전문가, 수업기술 전문가만 넘쳐나고 있다. 무엇인가를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잘 모르기 때문이다. 거미박사는 거미를 무서워하지 않고 똥박사는 똥을 더러워하지 않는다. 우리가 교사로서 학생들이 싫고, 무섭고, 밉다면 우리는 학생이라는 사람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학생이라는 사람을 잘 모른다는 말은 사람인 나 자신, 교사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는 말이다. 자신도 잘 모르고 상대방도 잘 모르는데 무슨 교육이 되겠는가? 서로 모르면 인권은 없다.


인권을 보장하며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인권을 가르친다면서 외국인노동자나 아프리카의 빈민이나 소년병사에 대해 가르치는 것도 좋다. 두발자유를 보장하고 체벌을 하지 않는 등 학생인권을 보장해 주는 것도 좋다. 그러나 지금의 학교현실에서는 학생들에게 의욕과 진정한 삶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인권이다. 매년 우리 반 학생들과 수업하는 학생들 모두에게 꿈이 뭔지 물어본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나는 반인권적이게도 감히 이 학생들에게 강제로 팔굽혀펴기와 엎드려뻗쳐를 시킨다. 이 과정에서 정말로 가슴 아픈 질문을 받았다. ‘어떻게 하면 꿈이 생기지요?’ ‘…’ 한참을 생각하다가 ‘그동안 사느라 수고했다. 너 자신을 좀 더 사랑할 수 있다면 꿈이 생길 거다’고 대답해주었다. 우리의 아이들은 더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데 친구나 부모, 교사들은 말해 뭐하나. 폭력도 그렇지만 사랑은 철저히 체험학습이다. 나는 다만 학생들을 사랑하고, 학생들에게 사랑받고 싶을 뿐이다.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도록
이렇게 상처받고 무기력한 학생들을 사랑해주는 일은 니일A.S. Neil이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을 무조건적 인정해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남과 자기 자신을 해치지 않는 한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만 교사는 그게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인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생각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지난해 비폭력대화연수를 마치고 학생들에게 부탁했다. ‘앞으로 내가 수업이나 학교생활에서 너희에게 이런저런 부탁을 할 텐데 제발 너희 마음속 깊은 곳에서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즉시, 단호하게 거절해다오’ 이런 과정을 거친 학생들은 분명히 의욕이 생기고 열정이 살아나 원하는 것을 말하기 시작하고 꿈을 갖기 시작할 것이다. 여러 교사가 요즘 학생들은 너무나 타율적으로 교육받아 와서 자율적으로 대할 수 없다고 말한다. 거짓말이다. 타율적인 인간을 자율적으로 만들려면 ‘주체적인 교사’가 그 즉시 학생 하나하나를 주체적 인간으로 대하는 수밖에 없다. 다른 길은 없다.


공부도 인권도 놀이가 되어야 한다
UN회의석상에서 세상 모든 문제에 대한 도전적 질문을 받은, 동양의 한 깨달은 분이 대답하기를 ‘잘 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했다. 공부가 재미없기만 하고 끝내 지루하기만 하다면 우리는 왜 공부해야 하나? 공부는 본질적으로 재미있는 것이다. 공부의 본질은 유희, 즉 놀이다. 생산력이 발전하여 빈둥거리는 시간이 늘어난 인간이 만들어낸 놀이이다.

인권의 본질은 피 흘리는 투쟁이지만 투쟁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놀이 아니던가. 나의 권리를 찾고 사람답게 살아가고자 동료와 연대하는 가슴이 벅찬 기쁨이 아닌가.

교사 스스로 사람에 대한 공부, 수업의 본질에 대해 공부를 하며 기쁨을 체험하고, 학생들과 수업과 학교, 대한민국을 진정한 ‘사람 사는 세상’으로 만들어 가는 동지로 연대하는 꿈을 꾼다. 촛불의 소시민적 상상력을 끝까지 밀어붙여 수업과 학교에 적용해 보자. 1학기 기말고사 치고 학생인권에 관한 여러 활동 중에 학생들이 야자타임을 하자고 한다. 정말 재미있었다. 그 미묘한 감정의 교류와 긴장을 이 글에서 다 담아내지 못해서 아쉽기만 하다.


깨달음의 대중화
이런 이야기들을 하다 보면 꼭 듣는 말이 있다. ‘너는 교사와 부모들이 무슨 성자라도 되는 줄 아느냐? 우리는 평범한 인간이고, 그런 것들은 깨달은 극소수만 할 수 있어’ 절대 아니다. 나를 포함한 대한민국 교사들과 부모들은 평범한 인간이지만 모두 깨달을 수 있다. 깨달음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상식을 지키는 것이다. 학생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 깨달음이다. 내가 너무나 미워하는 직장동료를 공개석상에서 욕하지 않고 폭행하지 않는 것이 깨달음이다. 학교에서 무수히 생산되는 이면지를 버리지 않고 재활용하는 것이 깨달음이다. 분리수거가 깨달음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안 남기는 것이 깨달음이다. 종이컵을 쓰지 않는 것이 깨달음이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깨달음이다. 역사적인 면에서도 이제 깨달음은 모든 인간의 의무다. 현대 자본주의는 국경을 넘고 농촌공동체를 해체하고 가족을 부수고 인간관계의 모든 면에, 심지어 개인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에조차 깊이 침투했다. 학교를 포함하는 모든 시공간을 지배하는 자본주의, 물신주의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평범한 개개인이 모두 깨달아야 한다. 윤리적 소비와 사회연대은행, 귀농운동 등이 모두 깨달음의 운동이다.

미래교육과 학교에 대한 상상을 시작하자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상상이다. 상상은 에너지며 힘이다. 상상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학생인권이 지켜진, 우리가 원하는 수업과 학교를 너무나 생생하게 그릴 수 있어야 한다. 대학처럼 수강신청을 하는 학교, 오전 1시간은 쉬는 시간이 있는 학교, 교사들이 학급단위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의사들처럼 예약을 받아 학생들을 일대일로 상담하는 학교, 출석만 하면 졸업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가치 있는 교과목의 필수 요목을 이수해야만 졸업하는 학교, 용산참사나 쌍용자동차 현장에 연대집회를 나가는 학생동아리가 있는 학교, 지역의 오염원을 감시하고 유기농법을 체험하는 학교, 외국인 노동자의 자녀도 학비지원을 받아 기쁘게 다닐 수 있는 학교, 졸업할 때까지 악기 하나씩은 다룰 수 있게 해주는 학교, 학생이 정치활동을 하다가 정부의 탄압을 받으면 학교장이 나서서 보호해 주는 학교. 이런 터무니없는 상상들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면 현실의 내 수업과 학교는 조금씩이나마 변하게 되어 있다. 내가 먼저 변하니까. 어떻게 보면 교실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는 교사가 변하면 수업이 변하고 학교가 변하게 되어 있다.


청소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첫째, 반항하라! 배워라! 즐겨라! 끝까지 반항하라는 것이다. 지금 학교 다니면서 약한 애들이나 괴롭히고 술을 마시고 담배 피우고 게임이나 하다가 졸업해서 군에 갔다 와서는 현실에 굴복해서 그냥저냥 살면서 ○○○당 선거운동이나 하며 용돈 벌고 대충 직장 다니며 직장 상사의 부당한 명령에 찍소리도 못하고 아부하며 공허한 가슴 달래려고 술마시고 하급자나 괴롭히고 집에 와서 아내나 패고 자녀들에게 공부하라고 강요한다면 ‘내 손에 죽는다’고 했다. 교과서에 나오는 쓸데없는 한자말과 영어에 대해 가르치며, 교과서를 이렇게 만든 이유는 되도록 많은 사람이 공부에 질려서 포기하게 하여서 나중에 사회에서 혼자서는 소송도 못하고 각종 전문가에게 주눅이 들고 살라는, 힘 있고 머리 좋은 사람들의 음모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나중에 사기당하지 않고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려면 공부하라고 강요했다. 그러면서도 악에 받쳐, 우울하게 자신과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을 해치지 말고 돈 쓰지 말고 즐기며 살라고 강요했다.
둘째, 권리는 자신에게 그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주장하는 사람의 것이다. 청소년들 자신의 권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구걸해서는 얻어내지 못한다. 배우고 익혀서 당당하게 권리를 행사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다만 청소년 인권은 청소년들 스스로 자신 중의 약한 부분과 사회의 약자들에 대한 인권의식을 가지고 그들을 돕기 위한 행동을 할 때만 궁극적으로 확보될 것이다. 우리 교사들과 부모들은 그런 당당한 너희를 지지하고 격려하고 끝까지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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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육 창간20주년 기념호  중 이재익 선생님(경북 의성공고 교사)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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